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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자유와 행복

하도. 2024. 1. 5. 01:28

세이노의 가르침, 부의 추월차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언스크립티드, 그 밖의 돈에 관련된 모든 책과 글들.
 
이것들은 나에게 빛을 보여줬다.
 


 
 
어느 항구도시에 사는 소녀가 있다.
그 소녀는 어느 날 바다로부터 많은 보석들을 가져오는 아저씨들을 만났다.
 
"아저씨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보석을 얻으셨나요?"
소녀가 물었다.
 
"배를 타고 저 바다 너머의 섬에 가면 아주 많은 보석들이 있단다. 너도 나중에 크면 갈 수 있게 될 거야."
소녀는 그들이 가져온 보석들처럼 그들이 빛나보였다. 
 
소녀는 그들이 되는 것을 꿈꾸었다.
 
 
"아버지 아버지, 오늘 아저씨들이 저 바다 너머에 보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어요.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소녀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작은 꿈을 향한 반짝이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얘야, 그 보석은 그들에게 다른 아픔을 가져올 거란다. 행복이 있으면 항상 불행이 뒤따르는 법이란다. 가지지 않은 사람이 가장 행복에 가까운 사람이야."
소녀는 슬펐다. 아무것도 가져본 적 없는 지금, 갖지 못한 지금에 만족하라니. 
아버지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어렴풋이 아는 소녀는, 더 많이 슬펐다.
 
 
 
다음 날, 소녀는 또다시 바다에 나갔다. 
'나는 저곳에 정말 갈 수 없는 걸까. 가게 되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될까.'
미지의 장소에 있는 보석을 바라는 소녀의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 도시로 돌아온 또 다른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제가 커서 그곳에 가기 위해선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배를 만드는 법을 배워라. 동료를 만들고 수영을 연습해라. 그리고 바다와 친해져라."
 
소녀의 눈은 다시 반짝였다.
'그래, 내가 언젠가 바다에 나가게 될 수 있잖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걸 해야 해.'
 
 
"아버지! 제가 지금 당장 바다에 나가겠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배를 만드는 것, 수영을 연습하는 것, 바다와 친해지는 것, 그 과정이 참 즐거울 것 같아요."
 
"그래, 뭐든 해도 좋아. 네가 만든 배로 보석을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면,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줄 수 있다면, 너는 뭘 해도 괜찮단다. 모든 것을 비우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란다."
 
 
 


 
 
 
아버지와의 대화였다. 
 
아버지는 돈을 버는 것보다 행복을, 돈은 아무나 벌 수 없음을 일찍이 깨닫고 행복을 좇으셨다.
이런 아버지에게서 배웠으니 당연한 걸까, 나는 돈에 대해 무지한 삶을 살았다. 
게다가 나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원대하고 허황된 꿈이 있었다.
 
어느 날 책을 읽게 되었다.
돈을 버는 일은 사실 나쁜 일이 아니다. 나의 가치를 인정받으면 돈이 따라 들어온다. 경제를 알면 투자도 할만하다.
게다가, "너는 나처럼 살 수 있다".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매혹적이어서 겁도 났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인 내가, 남들보다 특별해진 것 같은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내가, 좋았다.
 
내 주머니에 돈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에 가치를 제공했다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의 주머니에 들어가야 할 돈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었던 돈이, 나에게 오는 것이다. 그 얻음과 행복은 나를 진정 자유의 길로 향하게 하는가. 심지어 그 가치가 옳은지 그른지조차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세이노의 가르침에 나오는 윤리 게임이 생각난다. 전쟁터에서 휴머니즘 찾지 마라 (신동아, 2005)
 


나는, 지금 전쟁터에 있는가? 그 배경 자체가 헷갈린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인 듯하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행동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것임을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선,
지금 나를 둘러싼 환경이 전쟁터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평화를 얻었다.
그러나, 경제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눈과 귀를 막고 "이것을 소비하세요"라는 문구로 마음을 홀린다. 
 
내가 소크라테스가 되지 못할 것이라면.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갈릴레오처럼, 그것을 피한다면.
나는 부정한 인간인가, 그저 인간인가. 
 
어느 순간에도 내가 인간이고, 어떤 것을 택하여도 행복과 불행 모두를 맛보아야 한다면.
나는 작은 행복과 작은 불행을 택할까, 큰 행복과 큰 불행을 택할까. 
 
애초에, 내가 택할 수 있는 영역인가?
바람에 흔들린 나의 마음은 멈출 줄을 모르는데.
 
 
 
무엇보다 알아야 하는 건,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나의 작은 움직임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라 미래에 사는 누군가의 세상을 바꿀 작은 바람일 뿐일 테니까.
 
그런데 내가 바다와 친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을, 배를 만드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면,
나는 누구보다 바다와 친해지고 싶고 멋지고 실용적인 배를 만들고 싶다. 
 
이 열망으로 재물을 얻기 위한 욕심만 버린다면,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가르침이니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조금 더 근사한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전쟁터에서도 나보다 다친 누군가를 돕고, 함께 눈물을 흘리고, 다음 날의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다우는 느끼는 삶이라도,
그래도 괜찮은 것 아닐까. 
반대로, 전쟁터에서 나는 살아남았음을, 내 가족은 평안함을,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애도뿐이라는 것도 또한 삶이다. 그들은 정녕 내가 죽인 것인가? 전쟁터에서 운 좋게, 평소에 단련했던 실력으로 살아남은 것이,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인가? 
 
 
 
이 알 수 없는 고민은 계속된다. 
지금의 작은 결정이 나의 노년에 얼마나 크게 작용할지 알기에 더욱 두렵다.
그래도 이 길이나 저 길이나 해야 할 것은 비슷하다. 우선은 실력을 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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